온갖 풍조에 밀려 요동함

    온갖 풍조에 밀려 요동함

    북 아시아 지역 회장인 스코트 디 와이팅 장로가 지역 계획의 목표 중 하나인 ‘개종을 심화함’에 관해 이야기하다

    뿌리 깊은 나무

    와이팅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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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러 해 전에 하와이에서 살았을 때 태풍이 온 적이 있습니다. 굉장한 폭풍우였습니다. 태풍이 지나간 자리에 많은 나무가 쓰러져있는 가운데 몇몇 나무가 굳건히 서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왜 그 나무들은 쓰러지지 않았을까요? 그것은 나무들의 뿌리 깊이가 서로 달랐기 때문입니다. 뿌리가 얕으면 나무는 쉽게 쓰러질 것입니다. 그러나 뿌리가 깊다면 나무는 쓰러지지 않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역시 후기 성도로서 깊게 뿌리내릴 필요가 있습니다. 더욱 커져가는 세속적인 악과 사탄의 유혹이란 폭풍우와 파도가 휘몰아치는 가운데 쓰러지지 않고 견디려면 우리의 간증이 깊어야 합니다.”

    와이팅 회장은 씨뿌리는 자의 비유를 상기시켰습니다.1 이 비유에서 씨앗은 각각 종류가 다른 네 가지 토양에 떨어집니다. 길가에 떨어져 새들이 와서 먹어 버린 씨, 돌밭에 떨어져 뿌리가 없으므로 마른 씨, 가시가 기운을 막아 결실을 맺지 못한 씨, 좋은 땅에 떨어져 백배의 결실을 맺은 씨.

    “우리는 간증을 키워 씨앗이 토양에, 다시 말해 우리 마음속 깊이 심어지게 해야 합니다.” 우리 마음이 완악해진다면 씨는 뿌리를 깊이 내리지 못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진정으로 부드러운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댈린 에이치 옥스 장로님은 언젠가 매우 흥미로운 말씀을 하셨습니다. 간증한다 함은 (진리를) 알고, 선언하는 것입니다. 개심한다는 것은 (간증에 따라) 행동하고 또한 그러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간증하는 것은 좋은 일이기는 하지만 그것은 더 얕은 뿌리입니다. 더 깊이 뿌리 내리려면 (주님이 원하시는 그런 사람으로) 행동하고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2 그래야 큰 태풍이 올 때 굳게 설 수 있습니다.”

    간증과 개종—열 처녀의 비유

    “몇 년 전에, 데이비드 에이 베드나 장로님은 ‘등’을 ‘간증의 등’으로 그리고 ‘기름’을 ‘개종의 기름’으로 바꾸어 열 처녀의 비유를 새로운 관점으로 해석하는 방법을 가르치셨습니다.3 이렇게 해 보면 더 깊은 의미가 드러날 것입니다.

    ‘그 때에 천국은 마치 [간증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와 같다 하리니 그 중에 다섯은 미련하고 다섯은 슬기 있는 자라 미련한 자들은 [간증의] 등을 가지되 [개종의] 기름을 가지지 아니하고 슬기 있는 자들은 그릇에 [개종의] 기름을 담아 [간증의] 등과 함께 가져갔더니 신랑이 더디 오므로 다 졸며 잘새 밤중에 소리가 나되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 하매 이에 그 처녀들이 다 일어나 [간증의] 등을 준비할 새 미련한 자들이 슬기 있는 자들에게 이르되 우리 [간증의] 등불이 꺼져가니 너희 [개종의] 기름을 좀 나눠 달라 하거늘 슬기 있는 자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와 너희가 쓰기에 다 부족할까 하노니 차라리 파는 자들에게 가서 너희 쓸 것을 사라 하니. …’

    이렇게 읽으면 무엇을 배울 수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개종이란 우리가 스스로 이루어야 하는 것이며 나눠 가질 수 없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의 간증을 표현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간증의) 등을 빌려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개종의) 기름이 없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열 처녀는 모두 예수님께 초대를 받은 교회 회원이었을 것입니다. 이는 그 회원들 중 절반만이 개종했음을 의미합니다.

    이를 통해 개종이 참으로 중요함을 배웁니다. 간증 자체는 하나의 단계일 뿐입니다. 간증을 얻었다고 끝이 아닙니다. 간증의 뿌리를 점차 깊게 내리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그 간증을 강화하는 것입니다.

    아무도 예수님의 재림이 언제인지 모르나 (그 날)은 매일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그 날이 가까이 다가올수록 (이 세상의 폭풍우)가 더욱 강해지리란 걸 느낍니다.”

    개종하게 됨

    '제일회장단과 십이사도 정원회는 예수님이 곧 오실 것임을 알기 때문에, 우리 모두가 간증의 등을 깊이 뿌리 내리고, 개종의 기름을 경험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압니다. 그분들은 전 세계의 개종을 심화하는 일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이 일은 북 아시아 지역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개념은 신회원과 구회원 모두에게 적용됩니다. 여러분이 이 교회의 개척자 중 한 명일지라도 깊이 뿌리 내리지 않은 간증만을 가졌다면 우리는 여전히 염려할 것입니다. 경전에는 먼저 간증을 얻지 않고도 참된 개종을 경험한 몇 사람들의 예가 나옵니다. 앨마 이세와 모사이야의 아들들, 사도행전에서의 바울이 그런 예입니다. 이런 유형의 개종은 드물지만, 오늘날에도 여전히 가끔은 일어납니다. 그러나 우리 대부분은 개종을 위해 매일 노력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정확히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까?

    '매일 경전을 읽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매주 일요일에 성찬 모임에 참석하여 빵과 물을 취하는 것 또한 중요합니다. 교회에 참석하지 않고 경전을 읽는 것 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안식일을 준수하는 것이 또한 중요합니다. 성전에 참석하여 조상들을 위한 의식을 행함으로써 성전 성약을 새롭게 하는 것은 개종의 또 다른 지표입니다. 엘리야의 영을 느끼고 가족 역사 사업을 하는 것은 개종을 심화하는 또 다른 길입니다. 우리의 개종에는 단지 하나의 요소가 아닌 수 많은 요소들이 모여 도움을 주게 됩니다.

    전임 선교사였을 때 저는 그 점에 대해 언제나 이와 같이 설명했습니다. 이 탁자를 간증이라 한다면, 적어도 세 다리가 있어야 지탱됩니다. 한 다리는 경전을 읽는 것이고, 또 한 다리는 기도하는 것이며, 마지막 다리는 깊이 생각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기도라는 다리 하나만 있다면 간증은 그다지 강하지 않을 것입니다. 기도와 경전 공부를 모두 한다면 간증이 한층 강해질 것입니다. 나아가, 세 번째 다리인 깊이 생각함을 통해 간증의 등이 깊이 뿌리를 내릴 것이며 개종의 기름이 채워질 것입니다. 따라서 다리 하나만이 아니라 모든 다리가 필요합니다. 나무와 마찬가지입니다. 뿌리 하나 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바람이 어느 방향에서 불어오든 상관없이 굳게 서 있으려면 여러 뿌리가 체계(조직) 안에서 얽히고설켜 있어야 합니다.”

    깊이 생각함

    세 다리 중에서 읽기와 기도하기는 모세의 율법과도 공통된 외양적인 행위입니다. 매일 경전을 읽었는지 기도했는지는 증거에 근거하여 확인할 수 있습니다. 반면에 깊이 생각함은 그리스도의 가르침처럼 가장 높은 율법입니다. 볼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더 어려울 수 있습니다.

    와이팅 회장은 죽은 자의 구속에 관한 조셉 에프 스미스 회장의 계시인 교리와 성약 138편을 깊이 생각함의 예로 들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조셉 에프 스미스 회장님이 계시받는 방법을 배울 수 있습니다. 우선 그분은 방에서 경전을 읽으며 읽은 것을 “깊이 생각”하셨습니다. 그 내용이 1절에 나옵니다.

    2~3절에서 그분은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를 깊이 생각하셨습니다. 5~6절에서 ‘(그분이) 이렇게 하고 있는 동안’ 스미스 회장님의 마음은 여러 가지 것으로 ‘되돌아갔’으며 ‘크게 감명을 받았’습니다.

    11절. ‘(그분이) … 이 일들을 깊이 생각하고 있을 때, (그분의) 이해의 눈이 열(렸습니다)’. 깊이 생각할 때 여러분의 좁은 시야가 확대되고 하나님 아버지와 같은 더 넓은 시야를 가질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깊이 생각하는 방법에 대한 놀라운 가르침입니다. 조용한 장소에 앉아, 경전을 읽으며, 그것에 대해 되도록 깊히 생각해 보십시오. 저는 숙고할 때 제 자신에게 이렇게 자문합니다. (이것은 무엇을 뜻할까? 이 구절이 경전에 실린 이유는 무엇일까? 이것이 왜 중요할까? 내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이 구절에서 무엇을 배워야할까? 이 구절을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 이런 질문을 통해 제 생각은 더욱더 깊어집니다. 저는 자신에게 묻는 이러한 질문이 없다면 깊이 생각하지 못합니다. 그렇습니다, 몽상일 수도 있습니다. 저는 관련없는 다른 여러 가지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합니다. 따라서 깊이 생각함이란 긍정적인 행위입니다. 수동적인 자세로는 할 수 없습니다. 늘 그런 건 아니지만 가끔 경전을 읽으며 깊이 생각할 때, 한 구절을 읽고 생각하는 데 때로 한 시간 가량 걸릴 수도 있습니다.

    또한 깊이 생각할 때 계시가 올 때도 있습니다. ‘이는 이렇게 되었음이니 내가 나의 부친이 보신 것들을 심히 알기 원한 후에, 주께서 그것들을 나에게도 알려 주실 수 있으리라고 믿으며 내 마음으로 깊이 생각하며 앉아 있었을 때, 나는 주의 영에게 붙들리어 … 심히 높은 산으로 이끌려 갔느니라.’4 니파이는 정말로 아버지(리하이)의 시현이 알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신앙을 가졌습니다. 니파이가 그것에 대해 깊이 생각할 때 계시를 받은 것은 바로 그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일을 다른 예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힐라맨서에 또 다른 예가 나옵니다. ‘또 이렇게 되었나니 니파이는 주께서 자기에게 보여 주신 일들을 깊이 생각하면서, 자기의 집을 향하여 자기 길을 가니라. 그리고 이렇게 되었나니 그가 이같이 깊이 생각하고 있을 때-니파이인 백성들의 간악함, 곧 그들의 은밀한 어둠의 일과 그들의 살인함과 그들의 약탈함과 온갖 불의로 인하여 많이 의기소침하여-그가 이같이 그 마음에 깊이 생각하고 있을 때 이렇게 되었나니, 보라, 한 음성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5

    마지막으로 조셉 스미스의 예입니다. ‘내가 이들 종교적 열성자들의 논쟁으로 야기된 극심한 어려움으로 고민하고 있을 때, 하루는 야고보서 1장 5절을 읽고 있었다. … 경전의 어느 구절도, 이때 이 구절이 내 마음에 임한 것보다 더 힘차게 사람의 마음에 임한 적은 결단코 없었다. 그 구절은 마치 큰 힘을 지니고 내 마음의 느낌 속으로 속속들이 파고드는 것 같았다. 하나님에게서 오는 지혜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다면 바로 나라는 사실을 알았기에, 나는 거듭거듭 이 구절에 대해 깊이 생각하였다.’6 이 경험은 조셉을 어디로 이끌었습니까?

    어떤 사람들은 깊이 생각하도록 타고났습니다. 또 어떤 사람들에게는 그렇게 하는 것이 어렵고 많은 노력을 요합니다. 처음에는 저도 잘 하지 못했습니다. 생각하기 시작할 때 어떤 소음을 들으면 그것이 무슨 소리인지 궁금해하느라 도저히 집중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연습 끝에 저는 점차 제 생각에 더 잘 집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경전을 읽고, 기도하고 상고한다면, 즉 이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면, 신성한 것에 대한 우리의 개종이 깊어질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계시를 받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때로 우리의 간증은 작은 계시를 통해 점차 더욱 깊어져 마침내 개종이 될 것입니다. 우리의 개종이 깊어질 때 우리가 믿는 것은 우리가 아는 것이 될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이 지식이 되고 우리의 개종이 깊어질 때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께 더 가까워짐을 느낄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이 주는 평화와는 다른 평화를 느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십이사도 모두가 그러한 경험에 대해 잘 알고 있습니다.”

    잊어버림

    —와이팅 회장은 몰몬경에서 두 대조적인 시기에 대해 이야기 했습니다.

    “모사이야서 5장에서 베냐민 왕이 대 위에서 백성들에게 말했을 때 그들은 그 말씀을 들었고 모두 한 목소리로 외쳤습니다. ‘그러하오이다. 우리는 왕이 우리에게 하신 모든 말씀을 믿나이다. 또한 우리는 전능하신 주의 영으로 말미암아 그것의 확실함과 참됨을 아노니, 주의 영이 우리 안에, 곧 우리 마음 가운데 큰 변화를 이루셨으므로, 우리에게는 더 이상 악을 행하고자 하는 의향이 없으며, 끊임없이 선을 행하고자 하나이다.’7 개종이 무엇인지에 관해 여기에 적혀 있습니다. 큰 변화가 마음 가운데 이뤄져 더 이상 악을 행하고자 하는 의향이 없으며, 끊임없이 선을 행하려는 열망이 생겨났습니다.

    그러나 그 자리에 있었을 때 어린아이였던 다음 세대 사람들은 자라난 후 교회에서 떨어져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모사이야서 26장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제 이렇게 되었나니 자라나는 세대 중 베냐민 왕이 그의 백성에게 말할 때, 어린아이여서 베냐민 왕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었던 자가 많더니, 그들이 그 조상들의 전통을 믿지 아니하니라. 그들은 죽은 자의 부활에 관한 말을 믿지 아니하고, 그리스도의 오심에 관해서도 믿지 아니하였느니라. 이제 그들의 믿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을 수 없었던지라, 또 그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졌더라.’8

    5장을 읽을 때 사람들이 개종했음을 보게 됩니다. 26장을 읽을 때 자녀들이 개종하지 않았음을 보게 됩니다. 그들 가족과 교회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요?

    그들은 가정에서 경전 읽기를 잊어버렸거나 개종의 느낌을 잊었을 수도 있습니다. 사람들은 때로 잊습니다. 경전에는 부모가 자녀들에게 모범이 되었는지 혹은 기도했는지에 대해 아무 말이 없습니다.

    우리는 개종하기 위해 노력하면서 자녀들에게 좋은 모범을 보여야 하며 자녀들 역시 개종하도록 도와야 합니다. 우리는 가족 문화가 개종의 문화가 되어야 함을 볼 수 있습니다. 매일 경전을 읽고, 세미나리에 가고, 매주 교회에 참석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 그렇게 하지 않으면 청소년들이 가족으로부터 떨어져 나가지는 않을까 조금 걱정이 됩니다.

    그에 반해서 제3니파이에서 예수님이 직접 가르쳤던 사람들은 놀랍습니다. 그들 중 아무도 잊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자녀들도 또한 기억했습니다. 그들도 계속해서 그 후에 태어난 어린아이들을 가르쳤습니다. 그 후 200년 동안 사람들 가운데 악함이 없었습니다.9 모든 사람이 개종했고 매일 가족 안에서 가르쳤습니다. 그들의 개종 문화가 강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이 200년 간은 미리보는 복천년으로, 극히 드문 시기였습니다.”

    깊이 뿌리내리기 위해서

    '레이맨과 레뮤엘은 계시를 받았고 천사를 보았습니다. 그들에게 간증의 등이 있었지만, 개종의 기름이 부족했기에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몰몬경의 증인들도 또한 손으로 금판을 만져보고 계시를 받는 경험을 했지만, 그들은 잊어버렸습니다.

    따라서 간증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매일 개종을 심화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끝까지 견디는 것이 중요합니다. 한 번 천사를 본 것만으로는 완전히 개종했다고 하기에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미래의 어느 시점에서 우리는 때때로 우리가 느꼈던 느낌을 잊어버리고 길에서 벗어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매주 교회에 참석하고, 매일 경전을 읽고, 매일 기도하고, 깊이 생각하고, 교회에서 봉사하고, 성약을 새롭게 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 우리는 이런 행동을 계속해서 반복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런 패턴을 따르지 않으면, 우리는 연약해져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기]’10에 쓰러질 수도 있습니다.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은 한 때 우리에게 중요했던 지식을 잊어 버렸거나, 그런 지식을 가져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분명 미래에는 제일회장단과 십이사도 정원회가 세상의 유행에 반대되는 조언을 더 자주 하실 것입니다. 동성 결혼에 반대하는 것이 한 예입니다. 우리는 미래에 그런 조언을 더욱더 듣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 믿음이나 우리가 알고 있는 것에 깊게 뿌리를 내리지 않는다면 바람이 불어올 때 쓰러질 수도 있습니다. 저를 포함한 어느 누구도 예외일 수는 없습니다.” 

    1. 마태복음 13:3~9,18~23 참조.

    2. 댈린 에이치 옥스 “무엇인가 되어야 하는 과제”, 리아호나, 2001년 1월호 참조, 또한 제3니파이 27:27 참조.

    3. 데이비드 에이 베드나 “주께로 돌이켰고”리아호나, 2012년 11월호 참조. 또한 마태복음 25:1~13 참조.

    4. 니파이전서 11:1, 강조체 추가.

    5. 힐라맨서 10:2~3, 강조체 추가.

    6. 조셉 스미스—역사 1:11~12, 강조체 추가.

    7. 모사이야서 5:2

    8. 모사이야서 26:1~3 참조

    9. 제3니파이 11장부터 제4니파이 1:23까지 참조

    10. 에베소서 4: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