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번의 거절, 일곱 번째 권유

    밴치

    청주 스테이크 허창범 형제

    내가 중학교 2학년이었던 2012년 겨울, 아버지께서 갑작스럽게 돌아가셨다. 그 직후 어머니는 나와 동생을 데리고 생계를 위해 서둘러 시내로 이사를 하셨다. 충주 인근의 작은 시골에서 살았던 나는 달라진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아버지의 부재와 변화된 환경으로 인해 모든 것이 혼란스러웠던 나는 ‘왜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를 찾기 위해 고민했다. 하지만 나는 삶의 이유를 찾을 수 없었고 내 마음엔 세상에 대한 불만이나 분노도 있었다.

    이사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어머니가 동생과 함께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다. 그러나 나는 교회에 함께 나가지 않았다. TV 뉴스에 종종 비친 교회와 관련된 사건들을 보며 기독교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하게 자리 잡았던 터였다. 교회에 관해서라면 질색이었다.

    시내로 이사 온 지 약 일 년이 지난 2014년 1월의 어느 날, 어머니가 다니는 교회에서 온 두 젊은 남성이 우리 집에 방문했다. 그들은 정장을 갖춰 입고 검은색 명찰을 달고 있었으며 자신을 ‘선교사’라고 소개했다.

    교회라면 그렇게 싫어하던 나였지만 이상하게도 그들을 보자마자 마음이 따뜻해졌다. 대화를 나눌수록 그들이 선하고 좋은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우리는 꽤 오랜 시간 보드게임을 하며 놀았다.

    당시 내 주변의 몇몇 형들은 거친 욕설을 쓰거나 강압적으로 내게 이런저런 일을 시키는 어려운 존재였다. 나이대는 비슷해 보였지만 그 형들과 전혀 다르게 선하고 친절한 선교사들의 모습에 교회에 관해서라면 굳게 닫혀 있던 나의 마음이 서서히 열렸다.

    그 뒤로 선교사님들과 매일 만나게 되었다. 복음 토론도 시작했다. 장로님들은 몰몬경과 구원의 계획에 관해 힘있게 간증하셨다. 장로님들의 권유에 따라 2주가량 몰몬경을 읽으며 “장로님들이 참되다고 알고 있는 것을 저도 알게 해주세요”라고 기도를 드렸다. 그러던 어느 날, 여느 때처럼 기도를 드린 나는 몰몬경의 가르침이 참되다는 강한 확신이 드는 것을 느꼈다. 마치 마음속에서 폭죽이 터지는 듯했다. 나는 기도의 응답을 받았다는 것을 알았다.

    어머니는 내가 선교사들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해 침례를 결정했다고 생각하며 반대하셨다. 반면 장로님들은 내가 침례를 받을 준비가 되었다고 확신하셨다. 장로님들은 달력 하나를 가져와 ‘3월’을 펼친 다음 침례 날짜를 결정하기 위해 함께 기도해보자고 제안했다. 기도를 드린 우리는 모두 ‘3월 16일’이 강하게 떠올랐다. 나는 결국 어머니께 허락을 받고 침례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 후기성도 교회 회원이 되었다.

    교회에 관해 부정적이기만 했던 내가 선교사님들을 만난 지 두 달도 되지 않아 침례를 받은 것은 놀라운 변화였다. 한때 세상에 대한 불만과 분노로 가득했던 나였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를 통해 치유 받고 낙천적이고 행복한 삶을 살게 되었다. 진실하게 드린 기도들은 응답되었으며 하나님 아버지에 대한 신앙과 사랑은 점점 커져 나갔다. 나는 선교사로서 봉사하겠다는 결정을 내렸고 서울 선교부로 부름을 받아 2년간 주님의 종으로 영광스럽게 봉사했다.

    전임 선교사로 서울 동 스테이크 교문 와드에서 봉사하던 시기에, 나는 처음 우리 집을 방문했던 선교사인 정재환 형제님을 만나게 되었다. 정 형제님은 내게 “저희가 장로님 댁을 방문하기까지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아시나요?”라며 내가 미처 몰랐던 당시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어머니는 고등학생일 때 침례를 받아 우리 교회의 회원이 되셨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교회에 나가시지 않았다. 그리고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후, 친구분의 권유로 동생과 함께 수년 만에 교회에 다시 나가기 시작하셨다. 어머니가 재활동화 되고 몇 달이 지난 어느 날, 와드에 장로님 한 팀이 새로 이동 오게 되었다. 두 장로님은 회원 기록을 살펴보다가 우리 가족의 상황에 대해 알게 되었다.

    장로님들은 가족 중 혼자 교회에 나오지 않는 나를 만나고 싶어 했고 어머니에게 나와 만나게 해달라고 부탁하셨다. 내가 교회를 싫어한다는 것을 아셨던 어머니는 “큰아들은 하나님을 믿지 않아요”라며 장로님들의 방문을 거절하셨다. 두 장로님은 포기하지 않고 어머니에게 무려 여섯 번이나 똑같은 부탁을 했고 그때마다 번번이 거절을 당했다. 장로님들의 끈질긴 부탁이 일곱 번째에 이르자 마침내 어머니는 나를 만날 수 있도록 허락하셨다. 그렇게 장로님들은 우리 집을 방문할 수 있었던 것이다.

    나는 정 형제님으로부터 이 이야기를 듣고 나에 대한 하나님 아버지의 크신 사랑에 마음이 벅차올랐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작은 시골에 살았던 우리 가족을 “굽어보고” 계셨으며 내 “마음의 생각과 의도를 다 알고” 계셨다. (앨마서 18 : 32 참조) 그리고 나를 당신의 품으로 인도하시기 위해 거듭된 거절에도 결코 포기하지 않은 충실한 종을 보내주셨다. 나는 하나님 아버지를 사랑하며 그 분의 계획에 의지한다. “왜 살아야 하는지” 몰라 방황했던 어린 시절의 내게 올바른 길을 보여주신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드린다.

    * 기사를 쓸 당시 허창범 형제는 서울 선교부에서 전임 선교사로 봉사했으며 지난 1월 귀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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