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직 귀환하지 않았다.”

    열차안에 앉아 있는 장로들

    부산 스테이크 오경권 형제

    스물 두 살, 건강 상의 이유로 나는 선교 사업 도중 고향으로 돌아와야 했다. 체력이 회복되어 금세 임지로 복귀할 것이라 기대했으나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곧 돌아갈 기회가 올 거야.’라는 희망과 미련이 나의 학업과 사회 진출마저 주춤하게 만들었다. 중도 귀환의 아쉬움은 군대를 다녀와 학기 중간에 대학에 복학하면서도 계속됐다.

    초여름의 어느 날 아침, 잠에서 깨어나 보니 시계가 9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오전 첫 수업이 시작하는 바로 그 시각이었다.

    나는 곧장 학교로 뛰기 시작했다. 그날따라 허기지고 피곤했다. 날씨마저 더워 달릴 힘이 나지 않았다. ‘졸업반이니 교수님께 봐달라고 사정해보자…’ 마음이 안일해 졌고, 어느새 걷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이미 수업이 끝나기 10분 전이었다

    ‘다시 뛰어라.’

    갑자기 머리 속에 떠오른 말이었다. 그 말을 그냥 지나쳤으나 또 다시 같은 생각이 떠올랐다.

    ‘다시 뛰어라.’

    나는 그 느낌에 따라 학교 입구에서 반대편 끝까지 무작정 달렸다. 곧 강의실에 도착했고, 헐떡이는 숨을 가다듬으며 유일한 빈자리였던 맨 앞줄로 가서 조용히 앉았다.

    자리에 앉자마자, 교수님의 입에서 나온 ‘후기 성도’라는 단어에 깜짝 놀랐다. 교수님은 얼마 전 교내에서 전임 선교사와 마주쳤던 일을 말씀하시며, 학생들에게 이 교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으셨다.

    학생들은 일부다처제, 이단 등 교회에 대해 잘못 알려진 내용으로 답했다. 늦깎이 복학생으로서 학생들과 거리감이 있던 나는, ‘이상한 교회에 다니는 선배’라고 기억될까 두려워졌다.

    ‘그래도 말해야 한다.’

    또 다시 머리속에 떠오른 생각이었다.

    “제가 그 교회에 다니고 있습니다.”라고 토론이 끝나갈 때쯤 손을 들고 말했다. 강의실이 한순간에 조용해졌다.

    “학생들의 말한 것에 대해 제대로 설명해줄 수 있나?” 흥미로운 눈빛으로 교수님이 질문하셨다.

    나는 학생들의 말을 조목조목 짚으며 오해를 바로 잡았다. 말을 끝내자 너무 긴장되어 가슴이 뛰었다. 토론이 끝나자 교수님은 출석을 부르지 않고 수업을 끝내셨다.

    집으로 귀가하며,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 (베드로 전서 3:16)라는 바울 선지자의 말씀이 떠올랐다.

    나는 전임 선교사로 복귀하고 싶은 미련은 버리지 못하면서도, 특별한 신분이나 특정한 조건이 있어야만 선교 사업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은 아닌지 스스로를 반성했다. 회원 선교사로서 일상에서 가족, 친지, 친구, 동료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이 강하게 와닿았다.

    일상에서 역할에 충실하면서 복음을 알릴 기회를 찾고, 언제나 용감하게 우리가 믿는 바를 간증하겠다고 결심하는 순간이었다.

    비록 전임 선교사로서의 봉사를 다 끝내지 못한 아쉬움은 있더라도, 충실한 회원으로서 복음을 전할 수 있다. 좌절의 시기라고 생각했던 스물 두 살, 나는 선교 사업을 그만둔 것이 아니며, 선교 사업의 연장선에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