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세 부부의 ‘사랑의 유산’

    리드와 조이스 닉슨이 오렘에 있는 자택에서 함께 찍은 사진 리드와 조이스 닉슨이 오렘에 있는 자택에서 함께 찍은 사진. 닉슨 부부는 온 생애를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를 위해 봉사하는 데 바쳤다. 2019년 7월 10일, 수요일 사진: 로라 세이츠, Deseret News

    유타주, 오렘 – 조이스 닉슨(93)은 최근에 그녀의 남편 리드 닉슨(93)과 유타주 오렘에 있는 자기 집 소파에 마주 앉아 지난 73년 동안 그들이 함께한 모험에 관해 이야기했다.

    “우리를 왜 인터뷰하는지 잘 모르겠군요. 우리는 정말 평범한 사람들인데 말이에요” 조이스가 말했다.

    그렇지만 성전 제단에서 결혼한 순간부터 지금까지 전 세계를 무대로 한 23번의 선교 사업까지, 리드와 조이스가 함께 살아온 삶은 사실 평범함과는 거리가 멀다.

    평범하지 않았던 시작

    리드는 캘리포니아 공과 대학을 졸업하고, 2차 세계대전 때 2년 반 동안 미국 해군에서 암호 해독가로 일하고, 브리검 영 대학교에서 6개월을 가르치고, 사랑하는 연인, 조이스 존슨과 결혼하고, 선교 사업을 떠났는데, 이 모든 일이 그가 21번째 생일을 맞기도 전에 일어났다.

    리드와 조이스는 브리검 영 대학교에서 두 사람을 모두 알고 있었던 친구의 소개로 만났다. 당시 그들은 둘 다 20세였으며 리드는 수학 교사였고, 조이스는 학생이었다.

    “리드는 73년 전에 저에게 푹 빠져 버렸고, 이후로 계속 빠져들고 있어요, 다른 방식으로 말이죠.” 조이스는 2년 전 리드가 크게 넘어져 엉덩이뼈와 대퇴골이 부러진 때를 언급하며 농담을 던졌다. “이제 저에게 넘어지는 일은 그만두어야 할 텐데 말이에요.”(옮긴이: 영어에서 ‘빠져들다’와 ‘넘어지다’는 같은 단어이다.)

    1947년 3월, 리드는 캐나다 서부 선교부에서 2년 동안 선교사로 봉사하라는 부름을 받았다. 브리검 영 대학교를 떠나야 할 시간이 점점 다가오자, 리드는 조이스를 데리고 자신의 동료이자 친한 친구인 휴 비 브라운(후에 브라운 형제는 십이사도 정원회의 일원으로 봉사하게 된다)을 만나러 갔다. 조이스는 브라운 형제와의 대화가 정말 뜻밖이었다고 말했다.

    조이스 닉슨의 자서전 조이스 닉슨이 오렘에 있는 자택에서 자서전을 보여주고 있다. 2019년 7월 10일, 수요일. 사진: 로라 세이츠, Deseret News

    “브라운 형제가 저에게 그러더군요. ‘뭘 더 기다리는 거예요? 리드가 떠나기 전에 그와 결혼해요.’”

    그날 오후 리드와 조이스가 프로보의 유니버시티애비뉴를 걷고 있었을 때, 리드가 불쑥 말을 꺼냈다. “못 할 이유가 없지 않아?” 조이스가 그에게 그게 무슨 의미인지 묻자, 리드가 대답했다. “내가 선교 사업을 떠나기 전에 우리 결혼하는 게 어떨까?”

    그렇지만 그건 말처럼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교회 지도자들과 필요한 접견을 모두 마치고 나자, 스테이크 지도자는 성전 추천서를 발급받기 전에 총관리 역원의 승인을 받으라고 했다. 리드가 떠나기로 예정된 2주 전 월요일 밤에, 리드와 조이스는 마침내 그 당시 제일회장단의 2보좌로 봉사하고 있었던 데이비드 오 멕케이 회장과 전화 통화를 하게 되었다.

    맥케이 회장이 그들에게 돌아오는 수요일에 만날 수 있다고 얘기해 주었지만, 리드가 상황이 급함을 설명하자 맥케이 회장이 물었다. “그렇다면 이 일이 제가 지금 전화로 도와드릴 수 있는 일인가요?”

    “제가 캐나다 서부 선교부로 부름을 받아서, 2주 후에는 떠나야 합니다. 그런데 떠나기 전에 결혼하고 싶습니다.” 리드가 말했다.

    긴장된 침묵이 한동안 흘렀고, 리드와 조이스는 숨죽여 맥케이 회장의 답변을 기다렸다.

    “자매님을 사랑하시나요?” 맥케이 회장이 물었다.

    “그렇습니다.” 리드가 대답했다.

    “자매님은 형제님을 사랑하시나요?”

    “그렇습니다.”

    “자매님의 어머니가 반대하시나요?”

    “아닙니다.”

    “형제님의 어머니가 반대하시나요?”

    “아닙니다.”

    “그렇다면 저도 반대할 만한 이유를 못 찾겠군요. 계획대로 하시지요, 주님의 축복이 함께하시길 바랍니다.”

    리드와 조이스는 리드의 스테이크 회장에게 전보를 쳤다: ”데이비드 오 맥케이 회장 결혼 승인. 추천서 발송 요망.” 1947년 3월 27일, 당시 스펜서 더블유 킴볼

    장로의 집행으로 리드와 조이스는 솔트레이크 성전에서 인봉을 받았다. 10일 후 리드는 캐나다로 떠났다.

    리드가 떠난 지 일 년이 되기 5일 전에, 조이스는 뜻밖의 선교사 부름을 받았다. 선교사 부름장에는 편지에 찍힌 우편 날짜로부터 7일 후에 캐나다 서부 선교부에 도착해야 한다고 적혀 있었다. 그녀는 선교 사업에 필요한 서류를 작성하기 위해 와드와 스테이크 지도자들을 만나려고 계획했지만, 선교사 부름을 받았을 당시 실제로 그런 단계를 거치지는 않았다.

    조이스의 대학 기말고사도 문제였다. 시험 날짜는 그녀가 캐나다에 도착해야 하는 날짜에서 일주일 후로 예정되어 있었다.

    “수업을 듣는 선생님들께 모두 전화를 돌렸죠, 혹시 기말고사를 좀 일찍 볼 수 있는지 물어보려고요.” 조이스가 회상했다. “선생님들이 하나같이 기말고사는 걱정하지 말라고 하셨어요. 그때까지 했던 것으로 성적을 줄 수 있다고 말이죠.”

    조이스와 리드는 리드의 21번째 생일 직후 다시 만났다. 그리고 곧 리드는 서스캐처원 무스조의 지부 회장으로 부름을 받았다.

    그 이후로도 리드와 조이스는 상호부조회, 장로 정원회, 초등회, 컵스카우트 등의 부름을 수행하며 교회에 봉사했으며, 6명의 아들을 둔 부모가 되었다. 리드는 원자력 기술자로서 일하던 중 최초의 원자력 잠수함 USS 노틸러스의 원자로 설계를 돕기도 했다.

    그렇지만 결혼 생활을 시작할 무렵 선교사로서 봉사했던 경험은 그들이 함께할 남은 삶의 기초가 되었고, 그 후 그들은 약 23번의 선교 사업을 하게 되었다.

    사랑의 유산

    리드와 조이스 닉슨은 1990년대 초에 서인도 제도에서 장년 선교사로 봉사한 후, 1992년에 위스콘신 밀워키 선교부를 이끌도록 부름을 받았다.

    밥 앤더슨의 말에 따르면 닉슨 부부가 위스콘신으로 떠나기 전, 리드는 자신의 오랜 친구이자 이웃인 밥에게 그의 아내 캐럴과 함께 자기들을 따라서 위스콘신으로 오라고 말했다.

    “리드는 제가 그 선교부의 재정 서기가 되어 주면 좋겠다고 했죠.” 앤더슨은 말했다. “하지만 저는 아직 퇴직하지 않은 상태였고 여전히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선교 사업을 나갈 수는 없다고 못을 박았습니다. 하지만 리드는 이렇게 말했어요. ‘그럼 퇴직하면 되겠군!’”

    앤더슨 부부는 두 달 후에 위스콘신에 있는 닉슨 부부와 합류했다.

    선교부 회장으로 봉사하는 동안, 리드는 낯선 사람을 볼 때면 그가 신성한 잠재력을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그가 교회의 회원이 되었을 때 가져올 축복을 생각하며 사람들을 대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앤더슨은 자기 부부와 닉슨 부부가 함께 음식점에 갔던 때를 회상했다. “웨이트리스가 주문을 받고 가면 그는 제 쪽으로 슬쩍 몸을 기울이고는 이런 말을 하곤 했습니다. ‘저 사람, 훌륭한 상호부조회 회장이 될 것 같지 않나?’” 리드는 웨이트리스가 돌아오자 몰몬경을 주며 꼭 읽어보라고 권유했다. 앤더슨은 닉슨 부부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들은 정말 좋은 사람들입니다.”

    리드와 조이스 닉슨이 오렘에 있는 자택에서 함께 찍은 사진 리드와 조이스 닉슨이 오렘에 있는 자택에서 함께 찍은 사진. 닉슨 부부는 온 생애를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를 위해 봉사하는 데 바쳤다. 2019년 7월 10일, 수요일 사진: 로라 세이츠, Deseret News

    닉슨 부부는 밀워키 선교부에서 봉사하는 동안 새로운 회원들이 활동 회원으로 남는 데 어려움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리드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단지 침례에만 집중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저희는 새로운 회원들이 성전에 가기를 원했거든요. 성전이 최종 목표가 되어야만 합니다. 그리고 침례는 성전으로 향하는 길에서 한 걸음을 떼는 것에 불과하죠.”

    그래서 닉슨 회장과 닉슨 자매는 침례식이 끝나면 바로 장년 선교사 부부를 보내어 닉슨 부부가 만든 작은 소책자를 새로운 회원에게 주도록 했다. 닉슨 부부가 직접 만든 그 소책자에는 대여섯 장의 스크랩북 같은 페이지가 있었는데, 거기에는 그들의 침례 날짜와 성전 참석 예상 날짜도 같이 적혀 있었다.

    침례식에서, 장년 선교사 부부는 장차 성전 준비를 시작할 모임 시간을 정하곤 했다. 그들은 새로운 개종자에게 돌아가신 분 중에서 대리 침례를 통해 자신이 침례 받았을 때와 같은 경험을 함께 나누고 싶은 이가 있는지 생각해 보도록 묻곤 했다.

    이렇게 해서 이 새로운 회원들은 가족 역사 사업에 참여하게 되었고, 성전 의식을 위해 친척들의 이름을 준비하게 되었다. 그리고 닉슨 부부는 새로운 개종자들이 침례 후 일주일 만에 제한 사용 성전 추천서를 받기 위해 감독과 접견하는 것 또한 도움이 된다는 것을 발견했다.

    리드와 조이스 닉슨이 오렘에 있는 자택에서 함께 찍은 사진 리드와 조이스 닉슨이 오렘에 있는 자택에서 함께 찍은 사진. 닉슨 부부는 온 생애를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를 위해 봉사하는 데 바쳤다. 2019년 7월 10일, 수요일 사진: 로라 세이츠, Deseret News

    그렇지만 닉슨 부부는 개종자 활동 유지 프로그램을 새로운 프로그램으로 부르지 않았다. 리드는 이렇게 말했다. 왜냐하면 “모든 게 다 지침서에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리드와 조이스는 자신들의 아이디어를 새로운 프로그램으로 부르는 대신 “사랑의 유산”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그것은 성공적이었다.

    닉슨 부부가 선교부에 도착했을 때는 개종자의 25%만 활동적인 회원으로 남았다고 조이스는 말했다. 그렇지만 그들이 그 선교부에서 봉사하는 동안 개종자 보유율은 세 배가 넘게 증가했다.

    “최근 개종자의 80%가 성전에 갔습니다. 그리고 적어도 저희가 그곳에 있었을 땐, 성전에 갔던 모든 회원이 교회에 충실히 남아 있었어요.” 조이스가 회상했다.

    새로운 사명

    닉슨 부부는 1995년 위스콘신에서 돌아왔다. 그렇지만 리드와 조이스는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그들은 가족 역사 선교사 또는 전도 선교사로서 1년간 봉사하는 선교사업을 여러 차례 캘리포니아와 남아프리카에서 봉사했으며, 그리고 독일에서는 세 번이나 봉사했다. 그들은 또한 “사랑의 유산” 보유 계획을 가르치는 단기 선교사로서도 여러 번 봉사했다.

    그들은 약 23번의 장기, 단기 선교사업을 했고, 독일, 서인도제도, 영국, 뉴질랜드. 호주, 남아프리카, 하와이, 그리고 미국 본토의 여러 지역에서 봉사했다. 

    닉슨 부부가 호주에서 선교사업을 하던 중에 아들 제이가 예기치 않게 세상을 떠났다. 닉슨 가족의 친구이자 이웃인 로이스 파크의 말에 따르면, 닉슨 부부는 상심했지만, 항상 그 경험을 통해 주위의 다른 이들을 도울 기회를 찾았다고  한다.

    나중에 파크 자매의 아들이 세상을 떠났을 때, 조이스는 그녀에게 크나큰 축복이 되어 주었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닉슨 부부는 정말 우리가 해야 할 모든 것을 보여주는 모범이죠.”

    80세가 되던 해에 조이스는 남아프리카에서 봉사하고 있었다. 그곳에서 많은 신생아들이 신문지에 싸여 있는 것을 보며 그녀는 무슨 일이든 하고 싶어 했다. 그녀는 조각 이불을 만드는 “새로운 사명에 착수할 시간”이 왔음을 알았다.

    조이스는 집 지하실을 생산 라인처럼 바느질 방으로 만들고, “모을 수 있는 모든 천”을 이용해서 퀼트 이불을 만든다. 현재 그녀는 약 200개가량의 퀼트 이불을 만들어, 솔트레이크시티 후기 성도 인도주의 센터에 기증하고 있다.

    오렘에 있는 자택에서 퀼트를 정리하고 있는 조이스 닉슨 오렘에 있는 자택에서 퀼트를 정리하고 있는 조이스 닉슨. 닉슨은 자선 단체를 위해 2,700개가 넘는 조각 이불을 만들었다. 2019년 7월 10일, 수요일. 사진: 로라 세이츠, Deseret News

    7월 1일 현재까지, 조이스는 2,697개의 인도주의 퀼트 이불을 기증했다.

    조이스의 친구 헬렌 프레스콧은 조이스가 훌륭한 화가이기도 하다고 전했다. 집에는 그녀의 작품이 많이 걸려 있으며 그녀는 선물로도 많이 주었다고 한다. 조이스는 이렇게 말했다. “그냥 취미 삼아 그리는 걸 좋아할 뿐이에요,”

    리드는 가족 역사 사업과 관련된 것이라면 무엇이든 좋아한다. 프레스콧의 말에 따르면, 리드는 가족이나 친구가 어떤 문제로 고심하는 걸 보면 항상 먼저 가족 역사 색인 작업을 하고 있는지 묻고는, 색인 작업을 하고 있다면 모든 것이 다 해결될 거라고 확신한다고 한다.

    살아온 세월 동안 변하지 않은 것이 하나 있다면 그건 바로 그들이 서로 항상 의지했다는 사실이다.

    리드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무엇이든지 항상 함께했습니다. 그래야 하는 거잖아요?”


    수정사항이전 기사에서는 예기치 않게 세상을 떠난 아들의 이름이 제프라고   적혀 있었다. 그의 이름은 제이이다.

    수정사항이전 기사에서는 조이스 닉슨이 그녀의 선교사 부름을 히버 제이 그랜트로부터 받았다고 잘 못 설명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