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눈으로 계속해서 나아가다

    신촌 와드 선교사들

    지난 봄, 예비군 훈련 중 나는 갑자기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이송된 병원에서 깨어난 뒤, 모든 것이 달라졌다.

    흰 시트에 누워 혼란스러운 머리 속을 정리하려 애썼다. 연락을 받고 병원으로 달려 온 부모님께서는 내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는 전임 선교사로 봉사 중이었단다.”

    “… 제가요?”

    충격적인 이야기였다. 내 기억에 지금은 2015년이고 나는 군 복무 중이었다. 어제는 분명 군대 동료들과 술을 마셨고 만취 상태로 잠이 들었었다.

    하지만 부모님께서는 지금은 2019년이라고 하셨다. 내가 선교 사업 도중 훈련 통지서를 받고 예비군 훈련 중이었다고. 부모님과 나는, 내가 기억상실증으로 최근 4년 간의 기억을 잃어버렸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밖에 없었다. 의사 선생님은 기억 상실 이외의 다른 문제는 없다고 했고 곧 퇴원 수속을 밟았다.

    다른 무엇보다도 내가 선교 사업 중이었다는 말이 가장 믿기 어려웠다. 나는 저활동 회원이었으며 우리 부모님께는 개종 전의 앨마 2세와 같은 아들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언젠가 선교사가 되고 싶었던 나의 바람이 떠올랐다. 혼자 간직해왔던, 아무에게도 말 못했던 나만의 꿈이었다. 나는 부모님과 상의 후 선교 임지로 복귀하겠다고 결정했다.

    부모님은 놀라움과 두려움, 믿음, 희망. 마음에 이 모든 감정이 뒤섞인 채로, 나를 서울 선교부 사무실로 데려가셨다.

    마침, 선교부에 있던 30여 명의 선교사들과 서울 선교부 회장이신 브래드 테일러 회장님 부부가 나를 보고 달려왔다.

    ‘나를 보면 백 장로가 모든 걸 기억해 낼 거야.’

    선교사들 모두가 제각기 희망의 눈빛을 품고 나를 포옹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자동차 전조등에 비춰진 어린 사슴처럼, 나는 그저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마음이 복잡해졌지만, 곧 새로운 동반자와 함께 조심스럽게 선교 사업을 시작했다. 깊은 상의 끝에 테일러 회장님은 내가 새로운 지역에서 새로운 동반자들과 함께 봉사하도록 하셨다.

    나는 산만하고 집중력이 부족한 어린 아이 같았다. 순수하고 겸손하게 올바른 방향으로 가다가도 완전히 거꾸로 가서 방황하기도 했다. 선교 사업을 결심하게 했을 개종의 경험도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그러나 인내심 많고 친절한 동반자 두 명은(나까지 세 명이 함께 봉사했다.) “장로님은 우리의 가장 중요한 구도자입니다.”라며 결코 나를 놓지 않았다.

    가장 어려웠던 것은 하나님에 대한 신앙이었다. 내겐 여전히 답을 모르는 질문들이 남아 있었다.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께서 정말 살아계신지, 그리고 날 사랑하시는지 알고 싶었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너무도 간절했다. 기억이 돌아오지 않더라도, 이 질문의 답만 얻을 수 있다면 얼마든지 선교 사업을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내게 가장 중요하고 간절한 것이었다.

    선교부의 모든 선교사가 날 위해 금식 기도를 하고, 내게 자주 전화했다. 각자의 사진과 편지를 모아 선물했다. 예전에 봉사하던 지역의 회원들과, 내가 가르쳤다는 구도자와 신회원까지도 내게 사진, 편지, 심지어 경전 구절까지 보내왔다.

    3주가 지났다. 기억은 전혀 돌아오지 않았고, 마음에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당황스러운 마음은 여전했고, 마음의 고통이 커져갔다. 선교부 회장인 테일러 회장님과 접견하던 중 나는 울고 말았다.

    “신앙이라는 것을 가져보고 싶어요. 길에서 마주치는 모든 사람들이 무서워요. 사람들이 제게 ‘당신이 믿는 게 뭐예요?’라고 물어볼 때가 가장 무서울 때예요. 회장님, 저도 다른 선교사들처럼 신앙을 가진 선교사가 되고 싶어요.”

    테일러 회장님은, “참으로 설혹 너희가 믿기를 바라는 것 이상을 할 수 없을지라도, 이 바람이 너희 속에서 역사하게 … 하라”(앨마서 32:27)”라는 구절을 나누며, ‘참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작은 믿음을 굳게 잡으라’라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오랜 시간 대화를 나누었고, 많은 격려를 받았다.

    4주 차, 성전에서 엔다우먼트를 받던 날, 선교사로 가득 찬 의식실에서 나는 아름답고 강한 영이 임재함을 느꼈다. 더불어 하나님 아버지께서 살아계심도 느낄 수 있었다. 의식이 끝난 뒤 나는 테일러 회장님 부부에게 달려 갔다. “행복합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여기 계세요. 저는 집에 있어요.” 기뻐서 눈물이 흘렀다.

    기억은 돌아오지 않았지만, 하나님이 계신 것을 안다면 나는 계속 봉사할 수 있었다. 하나님의 존재를 느꼈고 성전이라는 ‘집’에, 동료 선교사들이라는 ‘가족’과 함께 있었다. 그거면 충분했다.

    성전 방문 3일 후, 5월 10일 금요일 오전 6시 30분.

    기상을 알리는 알람이 울렸다. 머리 속에서 무언가 일어나고 있었다. 내 상태가 이상하다는 것을 동반자들이 눈치챘고, 괜찮은지 물어봐 주었다. 그리고 내가 스스로 머리 속을 정리할 때까지 기다려주었다.

    잠시 후 나는 회장님께 전화를 걸었다.

    “테일러 회장님, 저 기억이 돌아오기 시작했어요!”

    전화기 너머로, 테일러 회장님 부부의 흐느낌을 들었다. 두 분은 죽은 아들이 살아 돌아온 것처럼 기뻐했다.

    이후 동료 선교사들을 만날 때마다, 우리는 비명을 지르며 서로 부둥켜 안았다. 전세의 친구들을 하늘에서 다시 만날 때의 기쁨이 그런 것이리라.

    디모디 알거 장로라는 서울 선교부의 어떤 선교사는 나의 일련의 사건에 대해 이렇게 전했다. 나 역시 그의 말을 지지하며, 여전히 우리에게 전세의 기억은 없지만 신앙의 눈으로 나아가야 함을 안다.

    “우리는 전세에서 모두 하나님 군대의 일원으로서 위대한 일들을 했지만, 망각의 장막을 거치며 우리의 특별함을 기억하지 못하게 되었다. 우리는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신성한 잠재력을 지니고 있음을 믿어야 한다. 지상에 있는 동안 현세의 눈으로 볼 수 없는 것을 신앙의 눈으로 바라보며 나아가야 한다. 그렇게 할 때 우리의 잠재력이 발휘된다.

    힘들고 의심에 찬 시간 동안 백 장로가 보여준 신앙과 모범에 감사한다. 우리 서울 선교부 모든 선교사들이 백 장로가 자신의 잠재력을 찾도록 도왔다. 이제 복음을 모르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기억하도록 우리가 도와 줄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