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온의 부모

    저는 부모와 가족에게 불필요한 짐이 되는 부름을 주거나 활동을 하지 않도록 지도자들이 가정을 신중히 생각해 주시길 권유하고자 합니다.

    1831년, 주님께서는 시온의 부모에게 한 계시를 주셨습니다.(교리와 성약 68:25 참조) 저는 부모에 관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저는 십이사도 정원회에서 28년 간 봉사해 왔으며, 십이사도 보조로 9년 간 봉사했었습니다. 모두 합하면 37년이 되는데, 이는 정확히 제 인생의 절반에 해당합니다. 

    하지만 저는 이보다 훨씬 오래된 또 하나의 부름을 갖고 있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바로 부모의 부름입니다. 곧 아버지요 할아버지로서의 부름입니다. 할아버지란 호칭을 얻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증조 할아버지란 호칭을 얻기까지 또다시 20년이 걸렸습니다. 이러한 호칭들, 즉 아버지, 할아버지, 어머니, 할머니란 호칭에는 책임과 경험에서 배어 나오는 권위가 따릅니다. 경험이란 강력한 스승입니다.

    제가 가진 신권의 부름은 교회에서의 제 위치를 나타내 주고, 할아버지란 호칭은 저의 가정에서의 제 위치를 말해 줍니다. 저는 이 두 가지를 같이 얘기하고자 합니다. 

    부모의 책임은 말일성도들이 헌신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들 가운데 하나입니다. 많은 회원들이 부모로서의 책임감과 충실한 교회 활동 사이에 균형을 유지하려고 애쓰면서 갈등을 겪습니다. 

    가족의 복지를 위한 가장 중요한 것들 중에는 교회에 감으로써만 얻을 수 있는 것들이 있습니다. 거기에는 한 남자가 아내와 자녀들을 인도하고 축복하도록 권세를 주는 신권이 있으며, 영원히 그들을 함께 묶어 주는 성약이 있습니다.

    교회는 “자주 모[여]”(교리와 성약 20:75) “너희가 함께 모였을 때에는… 서로 가르치며 선도하”(교리와 성약 43;8)도록 명령받았습니다. 모사이야와 앨마도 그들의 백성들에게 똑같은 가르침을 주었습니다.(모사이야서 18:25 및 앨마서 6:6 참조)

    우리의 목적은 “아비의 마음을 자녀에게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비에게로 돌이키게“(말라기 4:6; 니파이삼서 25:5--6참조; 교리와 성약 2;2--3)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요셉 스미스 이세의 이름을 부르시면서 “너는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이로써 주 앞에서 질책 당할 필요가 있느니라.”(교리와 성약 93:47)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셉은 그의 자녀를 잘 가르치지 못했습니다. 질책이란 단어가 그의 잘못을 고쳐 주는 데 사용된 유일한 때였습니다.

    그의 보좌였던 프레드릭 지 윌리암스도 “너는 … 네 자녀에게 빛과 진리를 가르치지 아니하였나니”(교리와 성약 93;41--42)라는 똑같은 비난을 받았습니다. 감독인 뉴엘 케이 휘트니(교리와 성약 93:44, 50)와 마찬가지로 시드니 리그돈도 같은 말씀을 들었습니다. 주님께서는 “내가 한 사람에게 말하는 것은 모든 사람에게 말하는 것”(교리와 성약 93:49)이라고 덧붙이셨습니다.

    우리는 도덕의 기준이 하락하여 이제는 낙하의 지경에까지 이르렀음을 보아 왔습니다. 동시에 우리는 부모와 가족을 위해 듬뿍 부어 주시는 영감의 인도도 보았습니다.

    교회의 모든 교과 과정과 활동들은 가정과 관련시켜 재구성되었습니다.

    •와드의 가르침은 가정 복음 교육이 되었고,

    • 가정의 밤이 재건되었으며,

    •계보는 가족 역사로 이름이 바뀌어 가족의 모든 기록을 모으기 시작했고,

    •역사적인 가족 선언문이 대관장단과 십이사도 평의회에 의해 발간되었으며,

    • 가족은 모임이나 대회 및 회의에서 널리 알려진 주제가 되고 있습니다.

    • 이 모든 일들은 가족을 영원히 함께 인봉하는 권능이 행사되는 성전 건축 시대의 서곡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가족을 향한 정면 공격을 견딜 수 있도록 부모와 주님의 종들에게 내려진 영감의 영을 알 수 있겠습니까?

    가족을 위해 가정 밖의 활동을 준비할 때는 세심한 배려가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가족을 위해 모든 것을 마련하기로 결심한 어떤 아버지처럼 될 수 있습니다. 이 아버지는 그 목적을 위해 모든 힘을 바쳐서 성공합니다. 그리고는 그 때서야 그들에게 가장 필요했던 것, 가족이 함께하는 것이 무시되었음을 발견합니다. 그는 만족 대신 후회를 얻게 됩니다.

    활동이나 프로그램 계획에 대한 간절한 마음이 앞서다 보면 부모의 책임이나 가족이 함께 시간을 보내야 하는 것의 중요성을 간과하기 쉬워집니다.

    이러한 교회의 활동과 프로그램이 가족에게 큰 부담이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복음의 원리는 이해되고 적용이 될 때 개인이나 가족 모두를 강화시켜 주고 보호해 줍니다. 가족에 대한 헌신과 교회에 대한 헌신은 서로 다른 것이 아닙니다.

    최근에 저는 “아기를 낳은 뒤로 그녀는 교회에서 아무 일도 하지 않아요.”라는 말을 듣고 대꾸하는 한 여성을 보았습니다. 아기를 품에 안은 그 여성은 감정을 섞어 말했습니다. “그 자매는 교회에서 중요한 일을 하고 있어요. 아기에게 생명을 주었지요. 그리고 아기를 키우며 가르치고 있구요. 교회에서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을 하고 있는 거예요.”

    다음 질문에 여러분은 어떻게 답하시겠습니까? “장애인 자녀 때문에 집에만 있어야 하는 자매와 생활비 외의 지출로 두 가지 일을 하기 때문에 교회에 거의 참석하지 못하는 형제를 활동 회원으로 볼 수 있습니까?

    이렇게 말하는 자매를 본 적은 있습니까? “우리 남편은 훌륭한 아버지이지만 감독이나 스테이크 부장도, 교회의 어떤 중요한 일도 해본 적이 없어요.” 그 말을 듣고 한 아버지가 강경한 어조로 말했습니다. “아니, 교회에서 훌륭한 아버지가 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어디 있겠어요?”

    가족을 잘 보살피면서 교회에도 충실히 나온다면 그야말로 금상 첨화라 하겠습니다. 교회에서 우리는 위대한 행복의 계획을 배웁니다.(앨마서 12:32 참조) 집에서는 이를 실천합니다. 교회의 모든 부름과 봉사는 가정 생활을 영위하는 데 귀중한 통찰력과 경험을 가져다 줍니다.

    부모가 된다는 것이 교회의 하나의 부름이라고 잠시 생각해 본다면 우리의 시각이 더욱 명확해질 것입니다. 사실상 그것은 그 이상입니다. 하지만 그런 정도로만 생각해도 우리는 가족을 포함시키는 활동을 계획하는 방법에 보다 균형을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저의 이 말씀을 교회에서 영감으로 주어지는 부름을 거절하는 구실로 삼아서는 안 되겠습니다. 저는 지도자들이 가정을 신중히 고려하여 부모나 가족에게 불필요한 짐을 지울 활동을 계획하거나 부름을 주지 않도록 권유하는 바입니다. 

    최근에 저는 교회에 직책을 가진 한 젊은 부부로부터 편지를 받았는데 그들은 모임에 참석하기 위해 어린 아이들을 맡길 보모를 자주 불러야 했습니다. 이 부부는 두 사람 모두 아이들과 함께 집에 있기가 어렵게 되었습니다. 뭔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청소년 활동을 계획할 때는 가족, 특히 어머니를 염두에 두고 계획하십시오. 어머니는 자신의 교회 부름과 남편의 부름 이외에도 자녀들을 준비시키고 이 활동, 저 활동으로 뛰어다녀야 하는 사람입니다. 어떤 어머니들은 실망하고 우울에 빠지기도 합니다. 모든 일을 다해 낼 수 없어서 죄스럽다는 표현까지 적혀 있는 편지도 받아 보았습니다.

    교회 참석은 일상 생활의 압박에서 벗어난 중간 휴식이라 할 수 있으며 또 그래야만 합니다. 평안과 만족을 주어야 합니다. 교회에 참석하는 것이 압박과 좌절을 안겨 준다면 이는 뭔가 잘못된 것입니다. 

    교회만이 부모의 유일한 의무는 아닙니다. 다른 기관들도 부모의 도움을 요구할 매우 합당한 명분이 있습니다. 학교와 고용주와 지역 사회, 이 모든 것이 균형을 이루어야 합니다. 

    최근에 한 어머니가 자기 가족이 인적이 드문 시골 와드에서 이사 왔다면서 당연히 그 곳의 활동들을 하루 저녁에 모두 몰아서 가졌다고 말했습니다. 잘한 것 같았습니다. 그들은 가족을 위해 시간을 낼 수 있었습니다. 저는 그들 가족이 식탁 주위에 함께 앉아 있는 것을 상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서쪽의 더 큰 와드로 이사 왔는데 회원들의 집은 교회와 가까웠습니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금 저희 가족은 화요일 밤, 수요일 밤, 목요일 밤, 금요일 밤, 토요일 밤, 그리고 일요일 밤에도 일정이 잡혀 있어요. 우리 가족에겐 너무 힘들어요.”

    기억하십시오. 여러분이 청소년 활동을 계획할 때는 가족, 특히 어머니를 염두에 두십시오. 

    대부분의 가족은 매우 열심히 노력합니다. 그러나 건강이나 재정적인 문제로 부담을 안고 있는 사람들은 노력하다가 쉽게 지치게 되어 결국엔 비활동으로 후퇴하고 맙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빛과 진리의 원천이자, 가족과 더불어 도움 받을 최상의 원천에서 위험과 슬픔이 있는 암흑으로 옮겨 가고 있음을 알지 못합니다. 

    무엇이 확실하게 가장 어려운 문제인가를 짚어 보아야겠습니다. 어떤 청소년들은 가정에서 가르침이나 지원을 거의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것들을 제공해 주어야 한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런 가정의 손실을 충분히 보상해 줄 활동을 꾸준히 제공한다면 부모들이 주의를 기울여 자녀들과 함께 시간을 가지거나 자녀들을 가르치기가 더 힘들어질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기도와 영감을 통해서만이 그 어려운 균형을 맞출 수 있습니다.

    종종 우리는 다음과 같은 말을 듣습니다. “우리 청소년들이 건전하지 못한 곳에 가지 않도록 재미있는 야외 활동을 자주 가져야 합니다.” 일부는 그렇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책임감을 가지고 자녀들을 위해 충분한 시간을 내도록 부모를 가르친다면 결국에는 자녀들이 집에 있게 되리라 확신합니다.

    교회나 학교에서 효과적으로 가르칠 수 없는 것을 가정에서 배울 수 있습니다. 가정에서 자녀들은 일하는 것, 책임을 지는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이들은 자신의 자녀를 갖게 될 때 어떻게 해야 할 지를 배울 것입니다.

    예를 들면 어린이들은 교회에서 십일조의 원리를 배우지만 그 원리가 적용되는 곳은 가정입니다. 가정에서는 매우 어린 자녀들도 어떻게 십일조를 계산하고 바치는지를 배울 수 있습니다.

    언젠가 해롤드 비 리 대관장님과 자매님께서 우리 집에 오신 적이 있습니다. 리 자매님은 저희 어린 아들 앞의 식탁 위에 동전을 한 움큼 올려놓으셨습니다. 그리고는 저희 아이에게 새 동전들을 한 쪽으로 밀어 놓게 하신 뒤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건 네 십일조야. 주님의 것이야. 다른 쪽 것은 네꺼야.” 제 아이는 양쪽을 살펴보더니 이렇게 말했습니다. “할머니, 더러운 동전 더 없으세요?” 진정한 가르침이 시작된 순간이었습니다.

    와드 평의회는 가정과 교회 간의 균형을 이룰 수 있는 완벽한 장소입니다. 이 곳에서는 각자 다른 입장에서 가족의 역할을 하는 아버지인 신권 형제들과 어머니인 보조 조직 자매들이 영감에 찬 통찰력으로 조직의 업무를 조정할 수 있습니다.

    평의회의 회원들은 각 조직이 부모와 자녀들에게 무엇을 제공하며 어느 정도의 예산과 시간을 쓸 것인지 비교할 수 있습니다. 이들은 가족을 갈라놓기 보다 단합시킬 것입니다. 또한 자녀들을 위한 활동보다 결손 가정이나 특별한 도움이 필요한 자들을 보살피는 일에 더 많은 것을 제공하게 할 수 있습니다.

    와드 평의회는 눈에 띄는 큰 자원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조부모는 부름 받지 않았다 할지라도 한때 자신이 걸었던 길과 같은 길을 걷고 있는 젊은 가족을 도울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부모들에게 다음과 같이 경고하셨습니다. “시온의 스테이크 안에 자녀를 가진 양친이 있으면 그 자녀의 나이가 여덟이 되었을 때 회개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과 침례와 안수에 의한 성신의 은사 등의 교리를 자녀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가르치지 아니하면 그 죄는 부모의 머리에 머물러 있느니라.”(교리와 성약 68:25)

    이러한 와드 평의회는 지금 우리가 필요로 하는 이상적인 곳입니다. 이 곳에서 가정과 가족이 온전히 자리할 수 있으며 교회는 부모를 밀어내기보다 지원해 줄 수 있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들은 자녀들을 가르칠 의무와 교회가 주는 축복, 양쪽 모두를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세상이 더욱 위험해짐에 따라  어느 때보다도 하늘의 권능은 더 부모와 가족에게 필요해졌습니다. 

    저는 경전에서 많은 것들을 공부했으며 많은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예언자와 사도들이 말씀하신 많은 것들을 읽었습니다. 그 분들은 한 남자이자 아버지인 제게 깊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분의 자녀인 우리를 진실로 어떻게 생각하고 계신지에 대해 제가 알고 있는 것의 대부분은 제 아내와 제 아이들, 그리고 그들의 자녀들에 대해 제가 느끼는 것으로부터 배운 것입니다. 이것을 저는 가정에서 배웠습니다. 제 부모로부터, 제 아내의 부모로부터, 제 사랑하는 아내로부터, 제 아이들로부터 배웠습니다. 사랑하는 하나님 아버지와 구속주에 대해 간증드립니다.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말씀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