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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기대치와 위대한 사랑

최윤환 장로님

북 아시아 지역 회장 최윤환 장로와의 인터뷰 (당시 북 아시아 지역 회장단 제2보좌)

질문 1. 평의회와 선교부가 높은 기대치와 위대한 사랑으로 일함으로써 회원들이 교회 회원으로서 생활하는 것이 축복이 되도록 도와주고 그들의 부담을 덜어준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가요?

우선 기대치의 ‘높음’과 사랑의 ‘크기’가 우리의 시각을 기준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시각을 기준으로 한다는 것을 이해하기 바랍니다. 교리와 성약 18편 10절에서 주님께서는 “인간의 가치가 하나님 보시기에 큼을 기억하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하나님처럼 될 수 있는 그런 큰 가치를 가진 존재로 보신다는 것이지요. 우리에 대한 높은 기대치는 여기서 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기대치가 얼마나 높은지 생각하다 보면 우리의 능력을 넘어서는 더 높은 수준의 일을 성취하도록 요구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러한 일은 위대한 사랑이 있을 때 실제로 가능한 일입니다. 위대한 사랑이 없으면 하나님의 높은 기대치는 중압감으로 느껴지고 지쳐버릴 수밖에 없습니다.

흔히 높은 기대치를 통계나 수치적인 결과와 성과로 생각해버리기 쉽습니다. 그러한 결과나 성과도 훌륭한 일이지만 하나님이 기대하시고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것은 그 과정에서 우리가 어떤 노력을 하고 어떻게 발전했느냐 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 너희가 어떤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냐?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같은 자라야 하느니라.”(제3니파이 27:27)라고 하셨습니다. 결국 하나님이 기대하시는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와 같이 완전하게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높은 기대치와 위대한 사랑을 가지고 한 단계 한 단계 과정에 충실할 때 주님의 축복으로 우리 자신이 더 개심하고,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고, 더 기쁘게 봉사하게 되며, 그럼으로써 교회 회원들에게 복음 생활이 축복이라고 느끼고 부담이 덜어지게 됩니다.

질문 2. 높은 기대치와 위대한 사랑을 줄 때 기적을 볼 수 있다고 십이사도 정원회의 닐 엘 앤더슨 장로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기적은 어떤 것입니까? 경전에서 높은 기대치와 위대한 사랑에 관한 모범과 이를 통한 변화와 기적의 사례를 알 수 있을까요?

몰몬경에서 그런 사례들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리하이가 주님의 명에 따라 니파이와 그의 형들에게 예루살렘의 라반의 집으로 가서 놋쇠판을 가지고 오라고 했을 때 그런 기적이 일어났지요. 니파이전서 3장 5~6절을 보면 리하이는 니파이에게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 보라 네 형들은 내가 그들에게 요구한 일이 어려운 것이라 하며 불평하느니라. … 이는 주의 명령이니라. … 그런즉 갈지어다, 나의 아들아, 네가 주께 은총을 입으리니, 네가 불평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

리하이는 아들 니파이에게 높은 기대치를 갖고 있었습니다. 달리 표현해 보겠습니다. “내 아들아, 네 형들이 불평하는 것과는 달리 너는 지금까지 불평을 하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너를 믿고 네게 명하신 일이다. 하나님께서 너에게 은총을 내리셔서 네가 놋쇠판을 가져 올 수 있을 것이다.”

니파이는 자신의 아버지의 이 말씀에 고무되어 우리가 너무도 잘 아는 이런 말로 대답했지요. “… 내가 가서 주께서 명하신 일들을 행하겠나이다. 이는 주께서 사람의 자녀들이 그가 명하시는 것을 이룰 수 있도록, 그들을 위해 길을 예비하실 것이 아니고는 아무 명령도 주지 아니하심을 내가 앎이니이다 …”(니파이전서 3:7)

아시다시피 니파이가 놋쇠판을 가져오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니파이는 여러 차례 어려움에 부딪히기도 했지만 주님과 아버지 리하이의 높은 기대치에 부응해서 결국 놋쇠판을 찾아서 광야로 가져왔습니다. 그 과정에서 니파이는 강한 신앙을 행사했고 주님의 영의 인도와 도움을 받아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그 밖에, 앨마 1세의 높은 기대치와 위대한 사랑으로 인해 교회를 대적하던 아들 앨마 2세가 회개하고 변화되어 위대한 선지자가 되었지요. 우리가 높은 기대치와 위대한 사랑으로 기적을 일으키려면 신앙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아들 앨마에게 이런 기적이 일어난 것은 아버지 앨마와 교회 회원들이 금식하며 신앙으로 기도했기 때문입니다.(모사이야서 27:14, 23)

질문 3. 높은 기대치와 위대한 사랑으로 일한다는 목표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실천해야 할까요? “나는 네가 잘할 것을 기대한다. 나는 너를 사랑한다.”라고 말해주는 것이 이 원리를 실천하는 것이 될까요?

우리가 부모로서 자녀를 대할 때를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자녀를 높은 기대치와 위대한 사랑으로 대하기 위해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바라보는 시각으로 자녀들을 바라보며, 자녀들이 그것을 느끼게 해주어야 합니다. 저희 자녀들이 청소년이었을 때 집에 값비싼 도자기를 사 놓았던 적이 있습니다. 도자기를 건드리지 말라고 미리 경고를 했지만, 아이들은 집에서 뛰어놀다가 결국 도자기를 깨뜨리고 말았습니다. 저희 아이들은 반성의 눈물을 흘리며 “아빠 죄송해요.”라고 진심으로 사과했습니다. 제가 훈계를 멈추고 괜찮다고 말하려는 찰나, 아내인 구 자매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괜찮아, 네가 도자기보다 훨씬 더 비싸. 다치진 않았어?”

자녀들을 하나님의 자녀로 여기십시오. 부모가 자녀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고 느낄 수 있도록 일상생활에서 진정으로 사랑해 주고 마음을 전달해야 합니다. 막내아들은, 부모님이 자신을 얼마나 귀하게 여기고 사랑하는지 그때 느꼈다고 종종 말합니다. 하나님의 시각으로 자녀들을 바라보고 진정한 사랑을 전하는 것이, 자녀에게 세상적인 높은 기대치를 주고 행동을 요구하는 것보다 더 중요합니다.

질문 4. 장로님께 높은 기대치와 위대한 사랑을 주었던 분이 있으셨습니까? 또한 다른 지도자들이 그러한 방식으로 평의회를 이끌었던 경우를 나누어주시겠습니까? 어떤 기적이 찾아왔습니까?

저희 아버님은 제게 훌륭한 모범이 되셨습니다. 제가 청소년 시절 교회 회원이 된 후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교회 회원들의 불완전한 모습을 보고 실망하여 교회에 나가지 않겠다고 아버님께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 아버님은, “주위를 둘러보지 말고 위를 보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돈독히 하거라.”라고 하셨습니다. 완전하신 주님을 바라보고 그분이 제게 지니신 높은 기대치에 따라 주님의 계명을 열심히 지키라고 말씀하신 것이지요. 저에 대한 높은 기대치와 사랑이 포함된 말씀이었습니다.

또 하와이에서 유학 생활을 할 때 만난 감독님도 제게 높은 기대치를 갖고 위대한 사랑을 주셨습니다. 그 당시 저는 그분의 보좌였는데, 그분은 제게 “나는 최 형제를 볼 때 (학생으로만 보지 않고) 미래의 교회 지도자로 봅니다.”라고 하시면서, 다른 유학생을 볼 때도 미래의 지도자로 보아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분은 저의 일거수일투족에 관심을 두고 사랑해 주셨습니다.

제가 처음 칠십인이 되어 북 아시아 지역 회장단에서 봉사하는 동안 당시 회장이셨던 데이비드 에프 에번즈 장로님은 항상 큰 사랑으로 격려해 주시고 믿어 주시고 칭찬해 주셨습니다. 또한 사도님들은 저마다 방법은 달랐지만 모두 높은 기대치와 큰 사랑을 갖고 계셨습니다. 그분들은 청소년과 청년들을 보실 때도 항상 미래의 지도자로 보십니다.

2009년에 전 세계 한인 청년 대회가 서울에서 열렸습니다. 이 대회는 앞으로 있을 SMYC(현재의 FSY)를 준비하는 데에 많은 청년들이 청소년 지도자로 부름을 받도록 준비시키는 특별한 대회였습니다. 한국 교회 사상 처음으로 서울에서 개최하는 대회인 만큼 여러가지로 준비하는 동안 어려움에 봉착했습니다. ‘처음으로, 그것도 서울에서 하는 전 세계 한인 청년 대회가 성공할 것이다,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라는 논의가 뜨거웠습니다. 저는 그때, “여러분 기도하십시오, 그래도 안 되면 금식하고 기도하십시오. 그래도 안 되면 금식하고 성전에 가서 기도해 보신다면 될 것입니다.”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모임의 성공 여부에 관해 이견이 사그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때 한 지도자가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지금 하나님의 종이 우리 앞에 와서 기도해 보고 금식하고 기도하고, 그래도 안 되면 금식하고 성전에 가서 기도하면 된다고 하시지 않습니까? 왜 안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우리가 하나님 종의 말씀을 믿고 신앙을 행사하면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 지도자는 우리들이 주님의 기대치를 갖고 신앙을 강화하도록 했습니다. 그분의 말씀 후에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참석자들의 마음이 겸손하게 되었고 그러한 기대치와 신앙을 받아들였습니다. 많은 기적이 일어났고 2009년 전 세계 청년 대회를 통해 후에 있었던 전국 청소년 대회(SMYC, EFY, FSY)를 성공적으로 이끄는 결실을 보았습니다. 후에 이 결속은 선교 사업의 소망과 확신을 키웠고 많은 청년과 청소년이 성인이 되어 선교 사업을 나갔지요.

할 수 있다고 믿었고 한마음 한뜻으로 노력했습니다. 신앙으로, 높은 기대치와 위대한 사랑으로 이끌었고 주님의 도우심으로 성공하게 된 것이지요

질문 5 . 이 목표가 어떻게 회원들의 부담을 덜어 줄 수 있습니까? 우리는 높은 기대치와 위대한 사랑에 감사함을 느끼기도 하지만 반대로 그러한 기대치를 충족시킬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오히려 부담을 느낄 것 같습니다.

우리가 높은 기대치와 사랑으로 열심히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목표한 바를 이루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자신에 대해 실망해서는 안 됩니다.

자신에게 실망하는 것은 자신의 정체성을 확실히 인지하지 못했을 때 옵니다. 실수와 실패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 아버지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존재라는 높은 기대치를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실패는 앞으로의 성공을 위한 밑거름, 즉 과정이 된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나의 복음을 전파하라 10쪽을 보면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자신을 다른 선교사와 비교하고 여러분의 외적인 결과를 그들의 결과와 비교하는 것을 피한다.” 사람들에게는 선택의지가 있기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여러분의 메시지가 참되다는 영적인 증거를 받고도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지요.

또 성공적인 선교사를 이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영이 여러분을 통해 사람들에게 간증하는 것을 느낄 때, 사람들을 사랑하고 그들이 구원받기를 원할 때, 사람들이 여러분의 메시지를 받아들이든 받아들이지 않든 모든 기회를 활용하여 선행하고 봉사할 때.” 이 모든 경우에 그 선교사는 외적인 침례 목표의 달성과 상관없이 이미 성공적인 선교사라는 것이지요.

또한 10쪽 마지막에는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이 최선을 다한 경우에도 여전히 실망을 경험할 수 있으나 자신에게 실망해서는 안 된다. 영이 여러분을 통해 역사하신다는 것을 느낄 때 여러분은 주님께서 기뻐하신다는 것을 확실히 느낄 수 있다.”

높은 기대치란 복음의 높은 표준에 따라 행하는 과정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것이지 외적인 결과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것은 아닙니다. 외적인 성취 결과로만 모든 것을 판단하는 것은 세상적인 기대치를 적용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높은 기대치에 따라 위대한 사랑으로 일하면 외적인 성취와 상관없이 우리는 주님처럼 될 수 있다는 그분의 기대치대로 내적으로는 성장하고 발전하여 그분을 닮아 갑니다.

그 분이 우리에게 가지시는 그런 높은 기대치와 위대한 사랑을 가지고 신앙으로 행할 때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것 이상의 일을 이루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기적입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일상생활에서 축복을 받아 나와 나의 가족이 행복해지고 복음 안에서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